부모님의 연애편지 1984년 4월 2일 Ep.29<She>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삼월을 보내고
시작의 의미가 사월의 문턱에 다다른 것처럼
아무런 하는 일 없이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른 채
이 귀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말았나 봐요.
현재까지 미루었던 숙제이지만
새로이 자신을 내어 풀잎처럼이나
가냘픈 사연이나마 깊은 마음으로
생각해 보려는 참인데, 이해하시겠죠
아무런 탓도 할 수 없는
숙이만의 사고를 가지고
그냥 그렇게 보내온 24시의 생활들...
숙이만의 초조함을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기에
많고 많은 나날들을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변화해 버린 채
끝끝내 욕심장이란
별명 같은 게 붙고 말았으야 했으니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오.
정말 오랜만에 보내준 편지 반가웠고요
덕분에 부모님 곁에서 일하는 숙이도 잘 지냈나 봐요
사월 초하룻날 거창에 갔지만 혜경이 친구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기에 못 만나고
일요일이라 말순이 역시 일직이라
우체국에 나가고 만나지 못한채
서에 있는 옥수친구네 집에서 조금 있다가
위천으로 올라와야 했으니까
모처럼의 봄나들이랄까, 외출이
하여튼 서운 섭섭하게 되어 버렸지 뭐예요
진모氏도 실감 나실런지 모르겠지만
숙이의 생활이니까 그냥 적어봤다는 것 아시겠죠
진모氏!
이상하게도 떨리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일찍부터 불러보지 못했던 대명사라고 할까
이야기를 곱게 수놓지 못함을
이맘 원망스러울 뿐이라오.
하긴 너무 많이 생각한 나머지
그 생각을 짧은 사연으로 엮을 수가 없어서
현재의 상태로 되어 버렸는지도
우표는 붙이지 않았지만,
차곡히 쌓여진 몇 장의 백지가 서러워서 떨고,
그리워서 울부짖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
기다리다 지쳐버린 누군가의 마음처럼
선뜻 나타나서 울먹이게 하는 그대의 모습이
희미해진 색채 위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같은 모습을 드리웠지요.
보내준 사진 정말 멋있었어요.
지금 시간에도 숙이만을 바라보며 섰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렘을 감출 수 없다오.
너무 겁주지 마세요
숙이 겁내기 싫으니까요
우리 다시 만나는 날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 봐요
다소 피로하다고 생각되면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소식 자주 줬음 좋겠어요
숙이 역시 그러할테니까
그럼 안녕히
1984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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