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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

부모님의 연애편지 1984년 5월 4일 Ep.33 <He>

부모님의 연애편지 1984년 5월 4일 Ep.33 <He>

 

물오른 길 뒤를 꽃피어 오른길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길

그리고 내 추억들을 만들어 줄 길

그 길위에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오늘은 조금 멎고 촉촉이 젖어든

풀 위에 동그란 물방울을 달고

조심조심 미끄러지는구나

 

은색빛을 담고 이슬로 가득 찬 내 공원은

작은 새들이 동틀때까지 지저 기고

하나둘 가라앉으며 흩뿌리던 이슬은

어느새 굵은 빗줄기로 변해 

오선지 위에 음율을 맺고 사랑하옵니,

내 텅 빈 동공은 그대 모습으로 가득 차고.

 

잘 있었어

편지 쓰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구나

하루하루가 바빠서 이제야 펜을 든단다.

(이해 바람)

 

교황 방한 때문에

어제는 서울로 파견도 다녀왔단다.

지금은 햇볕이 들지 않는 아주 신성한

바람이 불고 있는 아주대 앞 우정관광이라는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란다.

 

오늘따라 자꾸만

숙이가 보고싶어 지는구나.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라일락 같이

숙이의 향긋한 향기가

내 코끝에 와닿는다고나 할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내 품 안에 와락 끌어안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니 조금만 더 참아야지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은

고향의 흙내음이 

이곳 수원에까지 스미는 구나.

시간 관계상 오늘 여기서

이만 줄일게

 

84.5.4

"모"로부터